1973년 9월16일 빅토르 하라 사망


1973년 칠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즉시 체포되어 두 손이 뭉개지는 고문을 받고 

결국 수십발의 총알이 몸에 박힌 시신으로 발견된 빅토르 하라. 

그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다. 

기타치고 노래한다고 죽어야 하는 세상이라니...



'73년 6월 일어난 1차 쿠데타를 진압했지만 뿌리뽑지 못해서 3개월 만에 다시 일어난 쿠데타.

아옌데 대통령은 기관총을 들고 대통령궁에서 끝까지 싸우다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사라졌고 주검으로 돌아왔다.

 

 

나무위키에서 빅토르 하라를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 그가 살해당하기 직전에 지은 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파시즘의 얼굴들이 자아내는 공포를 보라!

저들은 계획을 칼날같이 수행해 나간다

저들에게는 피가 훈장이다

도살이 영웅적인 행동이다

오, 신이여, 이것이 당신이 만든 세상입니까? 

7일 동안 기적과 권능으로 일하신 결과입니까?

 (중략) 

노래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공포를 노래해야 할 때에는

내가 살아 있다는 공포

내가 죽어간다는 공포

내가 이 많은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

그처럼 무한대의 순간 속에

침묵과 비명만이 담겨 있는 것이

내 노래의 끝이다

내가 보는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내가 느꼈고,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이 

그 순간의 탄생이리라...

 

이 시는 그가 군인들에게 끌려가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옆 사람에게 종이를 맡기면서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고 한다.

 

2009년 빅토르의 무덤은 부검을 위해 파헤쳐졌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다시 치러졌다.

2015년, 빅토르 하라를 고문하고 살해한 혐의로 전직 군인 10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2016년 6월 미국 법원에서 빅토르 하라의 유족들이 

전직 장교 페드로 파블로 바리엔토스에게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유족 측이 승소하여 

바리엔토스가 유족들에게 2800만 달러 상당의 보상금을 지불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2018년 7월 3일, 전직 군인 7명이 빅토르 하라의 살해 행각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2023년 7월 14일, 미국정부가 

빅토르 하라의 살해자로 지목된 페드로 바리엔토스의 미국 시민권 박탈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5일 바리엔토스는 미국 플로리다 주 델토나에서 체포되었으며, 

12월 1일 칠레로 송환되었다.>>

 

 

이런 것이다. 

뿌리뽑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고,

그때 못했으면 시간이 지나도,

50년이 지나도 죄는 물어야 하고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누에바 깐시온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

빅토르 하라.

90년대가 끝나는 시기에 나왔던 책,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책에서는 김남주와 안치환을 말했지만 나는 정태춘을 생각했었다.

부록 CD에 있던 그의 노래는 파일로 바뀌어 내 아이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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