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9일 일요일

섬진강 기차마을

섬진강 기차 마을.

기차로 곡성역에서 내리면 걸어 다니면서 구경할 수 있다. 

6월이었다. 무지 더웠다. 이런 날씨에는 우산이나 양산이 필수가 아닐까 싶다. 기차 마을 안에는 덥지만 않다면 산책하기 좋을 것 같은 길들이 있다. 다행히 기차 마을 안에 아이스크림, 팥빙수 등을 파는 곳이 있다.   

레일바이크도 있는데 타지 않았다. 시간도 맞지 않았고, 예전에 정선에서 타본 적도 있고, 또 너무 더워서...

꼬마 기차를 타고 기차 마을을 한 바퀴 둘러 볼 수도 있고, 천천히 움직이는 옛날 기차를 타고 마을 바깥으로 나갈 수도 있다.

제대로 다 해보려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서 자세히 알아보고 예매를 하는 것이 좋다.


식당도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들도 있다. 물 흐르는 물 분수도 있고... 좀 부족한 듯 하지만 소소하게 걸어 다닐 만한 곳이다.




곡성역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곡성역사.재미있는 모습이다.



역에서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이렇게 기차마을 입구가 있다.



여기까진 나무그늘이 있는 입구


                                                               
                             


엣날 기차와 엣날 기차역


                                   
나만 은하철도 999를 떠올릴까? 



여행 다닐 때 되도록 기차를 타려고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기차에 비해서 일반 자동차 길이 훨씬 더 발달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기차는 점점 더 없어지는 느낌이다. 자동차가 너무 많다. 이 상태로는 우리 철도가 발전하기는 커녕 점점 더 쇠퇴할 것 같다. 통일이 되면 대륙으로도 기찻길이 이어져서 우리 철도가 발전할텐데......





남사예담촌


덕천서원을 나서면서 생각해 보니 진주에서 올 때 예담촌 표지석을 본 기억이 났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도 적어둔 곳이다.  시간만 맞으면 진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덕천서원을 나와서 찻길을 따라서 정류장으로 걸었다. 그런데 정류장까진 아직 한참 남았는데 버스가 지나가 버렸다.  시간계산을 잘못했던 것 같다. 포기하고 걸었는데 뜻밖에도 정류장에서 버스가 가만히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였던것 같다.



덕산 터미널(?) 시간표


여기서 버스로 10~15 분 정도면 예담촌에 도착할 수 있다.

예담촌에 들러서 이곳저곳 집들과 골목을 돌아다녔다. 찻길에 인도가 잘 안되어 있는데 차들이 굉장히 빨리 달린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는 차도 많고...이런곳에 함부로 차를 세워놓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우리나라에 차들이 너무 많다. 차를 좀 멀리 놓고 걸어오게 했으면 좋겠다.



남사 예담촌 어느 집에 들어 갔더니 고양이가 죽은 듯이 자고 있었다.




자기 시작 했을 때는 햇볕이 있던 위치 였던 것 같다. 내가 봤을때는 그늘져 있었다.
사진에서 보면 위쪽에 있는 사람들은 햇볕속에 있다. 



그늘이라 좀 추운지 인상을 쓰면서 자는 것 같다.



부부 나무. 부부가 같이 이 나무밑으로 지나가면 금슬이 좋아진다고 안내문에 써있었다.







이곳은 곶감이 유명하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에 슈퍼가 있는데 거기서도 곶감을 판다. 반시도 있고 그냥 곶감도 있다. 예담촌 안에도 돌아다니다 보면 곶감 판매 하는 곳이 있다. 무인 판매하는 곳도 있다. 이왕이면 돌아다닐만큼 돌아다닌 후에 살 것을 권한다. 가격이 다르다.







산천재, 남명기념관, 덕천서원

   산천재를 다녀왔다.

   산천재는 남명 조식(1501~1572)이 선생께서 말년에 10년 정도 거주했던 곳이다.


   진주 시외버스 터미널 매표소 4번 창구에서 산청 덕산 가는 표를 구입했다. 2018년 2월 현재 산청행 표를 파는 창구에서는 팔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4번 창구로 가는게 낫다. 배차 간격은 한시간에  대 꼴이고 소요시간은 50~60분, 요금은 사천원 정도이다. 덕산 터미널(간이 정류장?)에 내려서 터미널을 등지고 왼쪽으로 가면 한국선비문화원, 남명 묘소, 남명기념관, 산천재가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덕천서원이 있다.  



   먼저 남명기념관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걷다 보면 오른쪽에 한국선비문화원이 보인다. 가끔 신입공무원 연수도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쉬는 날인지 비어 있었다. 건물은 잠겨 있는것 같았고 잔디밭, 건물 외부만 둘러 보았다. 건물 지붕이 높은 처마로 되어 있고 약간 위압감도 있으면서 보기 좋았다. 궁도 체험을 할 수 있는 터도 있었다. 


   나와서 좀 더 걸으니 남명지묘南冥之墓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을 들르는게 순서일 것 같다. 
약간 작은 산이다. 올라가서 보니 석축에 까맣게 색이 변해 있다. 변색되는 석축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원래 이런건 그냥 놔둬야 하는 건지 특별한 관리를 해야 하는 건지...   

   묘소는 숙부인(두번째 부인이라고 한다) 묘가 아래쪽에 있고 남명선생 묘는 위쪽에 있다.  묘소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니 경치가 무척 좋다. 차분해지는 경치, 분위기가 있다. 이 자리는 생전에 남명께서 직접 정해놨다고 들었다. 묘소가 아니라 집터로 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이 남명기념관으로 이어져 있다. 남명기념관 정문에 들어서서 왼쪽에 동상이 있다. 유명한 상소문도 새겨져 있다. 대비를 '한낱 과부'로 칭하고 임금을 '어린애' 로 칭하는 구절이 들어 있는,  아주 파격적인 내용의 상소문.



남명 기념관 마당에서 보는 동상

   남명기념관에서 선생이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작은 칼을 보고 싶었다. 직접 보니까 어딘지 이상해서 문화해설사에게 진품이냐고 물어봤더니 어쉽게도 진품은 유실되었고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손잡이까지 30cm 정도 되는것 같다. 정신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칼을 지니고 다니는 선비...멋지지 않은가.


   기념관을 나와서 찻길을 건너면 남명께서 거주하셨던 집,  <산천재山天齋>가 있다. 남명께서는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명의 선비다운 모습은 제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제자들이 놀랍게도 80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산천재는 상당히 작은 집이다. 제자들을 많이 가르치기에는 무척 좁다. 대여섯 명도 앉기 힘들어 보였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 가난하게 지내면서 조용히 자신을 닦고 제자들을 키워내고, 정말 커다란 나라의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상소를 올리고...

   어떻게 가르치면 제자들이 80여명 이나 의병장이 될 수 있는 걸까?


   < 스승은 억지로 제자를 일으켜 세울수는 없다 > -오마이뉴스





   산천재 앞으로 작은 강이 흐른다.  물가를 따라서 덕천서원 쪽으로 걸었다. 시장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학교를 지나면 덕천서원이다. 버스 내린곳이 산천재와 서원의 중간 쯤 되는 것 같다. 기념관 문화해설사 말에 의하면 남명 사후에 제자들이 돈을 모아 산천재 주변 땅을 사서 서원을 지으려 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좀 떨어진 이곳에 짓게 되었다고 한다. 거리는 1.2km  정도 되는것 같다. 




덕천서원 입구







들어가서 본 덕천서원 마당과 건물



   위에 보이는 건물이 가운데 있는 것이다. 아마 강의하는 곳 이었을 것이다. 앉아서 쉬면서 차와 간식을 먹었다.

   멋진 곳이다. 주변 풍경도 고즈넉했다. 옆에 있는 학교에 학생들이 있었다면 좀 다른 느낌이었겠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흠이라면 바로 앞이 찻길이어서 차소리가 난다는 것. 사람없는 때를 골라서 또다시 와보고 싶은 곳이다.


   몇년 전부터 조선시대 선비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선비다운 선비, 지성인 다운 지성인의 자취를 살짝 따라가 본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