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8일 토요일

격언들




인생은 길지 않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생각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
        
                                          - 사무엘 존슨



가장 좋은 직업은 노래를 만드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직업은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 힐레어 벨록



완벽함이란 더 이상 무엇인가를
더할 것이 없을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무엇인가를 뺄 것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 ???



싱어 송 라이터는 얼마나 좋은 직업인 건지...^^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앨범을 사다.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며 들춰보지 않던 앨범들을 찾아보았다.
사실은 컴에 음악을 넣으려고 한 것이다.

오랫동안 음악을 듣지 않고 지냈다.
예전부터 넓게 듣던 편이 아니라 친구들이 권하는 앨범을 자주 듣는 정도였다.
음악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 앨범들을 들으며 지낼 수 있었다.
작년부터 음악을 시간내서 듣는 일이 거의 없어진 듯 하다. 아마도 일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중요한 이유는 나의 게으름이다. 늘어진 생활이 꽤 오래된 것 같다.

이제 늘어지다 못해 서서히 깨어나려는지 음악들을 일하는 컴에 넣을 생각이 났고
앨범을 뒤적였다.  iTunes를 이용해서 AIFF 파일형식으로 여러 장을 넣고 확인했다.
그런데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닉 드레이크의 '핑크문'(닉-드레이크-핑크문)이
재생불가로 나오는 것이다. 비록 원판은 아니었지만 고이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곡이 안나오는 상황이 되었다. 집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본을 찾았지만
집에 백업한 것은 없었다. 이사하면서 정리된 모든 것을 다 뒤졌지만 없었다.

참으로 생각없이 지낸 몇 년 인걸까?
무엇에 밀려서 좋은 음악도 못 챙기고 지냈을까?
그만큼 중요하고 바쁜 일이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약간의 짜증이
올라온다. 많은 것을 기억하며 지낼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좀 더 깨어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참에 앨범들을 정리하고 아예 닉 드레이크의 '핑크문'을 사기로 했다.
Hot Tuna의 'Hot Tuna'도 끼워서 같이...
예전에 서우영이 1집 내고 얼마 안되었을 때 라디오에 나와서 통기타 하나로
놀라운 노래를 했었다. DJ가 소개할 때 느낌이 와서 바로 테이프에 녹음을 했었다.

(음악 조금 좋아하던 사람들이면 과거에 나처럼 공테이프를 항상 카세트에 꽂아두고
느낌이 오거나 기다리던 곡을 DJ가 소개하면 재빨리 녹음 버튼 누르던 기억이 있을것이다.)

바로 Hot Tuna 1집 첫 곡인 'Hesitation Blues' 이었다. 테이프에 녹음한 것이어서
지금은 듣기 어렵다. 그때 듣기에는 서우영이 훨씬 좋게 들렸다. 이젠 서우영이 치는
통기타와 그 목소리로 들을 수 없겠지만 (혹시 그가 공연을 한다면 팬 서비스로
할 수도 있겠다.)
그의 통기타와 목소리는 '압구정 락앤롤'로 만족하고 Hot Tuna 원곡을 주문했다.

음악이건 다른 예술이건 생활과 가깝게 지내면 반드시 좋은 것이다.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정태춘, 박은옥 30주년 공연

매우 서정적이고 민속적,토속적인 노래들을 불렀던 가수들이다.
70~80년대 그들의 노래를 말할때 하는 말이다.
80년대를 지나면서 정태춘의 노래에 변화가 생겼다. 그전에 이미 그 싹을 보였던
작품들이었지만 80년대를 지나면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가 비판적 사실주의의 최고봉에 올라있는 예술가중 하나라고 말했었다.
탁발승의 새벽노래, 얘기,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 시인의 마을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정서가 시대를 지나면서 솔직한 얘기들을 '아,대한민국' 앨범에 담아냈을 때 ...
충격!....     받았다.

워낙 통기타 소리를 좋아했었던 90년대의 나였지만
그의 말과 그걸 노래로 풀어내는 그 모습에 놀랄 뿐이었다.

93년에 존 렌번의 'Another Monday'를 듣기 전까지 통기타 중심의 음악중에서
저 기타 트리오(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의 존 맥클러플린, 파코 데 루치아, 알 디 메올라)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앨범이 '아, 대한민국' 이 되었다.

지금이야 힙합하는 음악인들이나 락커들이 이런저런 세태를 비꼬는 듯한
풍자를 하지만 정태춘의 사전심의제도 철페 운동이 승리하기 전에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정말 정태춘의 승리의 열매를 많은 사람들이 잔뜩 먹고 있는 모습들을 보곤 한다.


이번 30주년 공연은 그의 아내이자 오랜 시간을 같이 노래해 온 박은옥의
무대로 생각하고 준비하다가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년전에 있었던 평택 대추리,도두리 미군기지 이전과 관련해서 열심히 싸웠지만
어쩔수 없이 끝이 나고 정태춘은 매우 실의에 빠져있었고 노래를 더 이상 안할지도
모른다는 말들이 주변에서 나오곤 했다 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공연장 입구인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입구에 세워져 있던
임시 간판(?)의 사진이다.
길거리에서 하우스 오픈을 기다리는데 알 수 없는 흥분이 밀려왔다.
예전에 들국화의 고별콘서트(아마 88년?)보러 가서 기다리던 그런 흥분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어떤 공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느낌...!

하우스 오픈에 맞춰서 입장권을 구해주신 관계자 분께 음료수를 드리면서 인사하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참 소리좋은 스피커가 걸려있었다. L-Acoustics의 Arcs !   L-Acoustics의 스피커들은
기본적으로 큰 특색이 없는 듯 하다. 꼬투리 잡을 만한 구석이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규모인 500석 정도되는 공연장이었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박은옥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첫 곡...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올라와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눈물이다.
박은옥의 목소리가 그렇게 서글픈 소리였을까?...
공연내내 자주 흐르던 눈물들...   통곡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다물기도 했다.

도데체 뭐였을까?
내 눈물의 정체는...?
'우리들의 죽음'처럼 아픈 노래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밖의 노래들에서는 그렇게 눈물 흘릴 이유가 뭐가 있었을까......?

'아, 대한민국' 앨범이후에 '92년 장마,종로에서'의 앨범을 듣고
'음...  이사람의 정서와 생각이 또 바뀌는구나'라고 느꼈다.
몇년뒤 '정동진' 앨범의 슬라이드 기타소리를 들으며 정말 이사람은
시대와 같이 가는 진솔한 음악인 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엇인가 계속 바뀌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는 계속 있어주는 사람, 음악...

'우리들의 죽음' 바로 뒤에 '92년 장마, 종로에서' 를 배치한 것은 무척 절묘했다.
비록 '92년...'의 노랫말처럼 '이제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 처럼 되지 못하고  2008년의 촛불정국으로 종로에서 수많은 기자들과
군중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사이에 정태춘은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벌에서 미군기지관련 투쟁을 하고 경찰들에게 끌려나가고
지금까지 침잠하고......






공연에서 또 기억나는 한가지,
정태춘이 아내이자 동료인 박은옥에게 보내는 편지 낭독...
'나보다 더 노래하는 것을 사랑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생각하오...' 라는 대목이다.
박은옥이 하는 말,'그것 하나는 정말 인정해줘서 고맙다....'
과거에 박은옥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노래' 라는 말과 정태춘의 '세상을 바꾸는 노래'란
말들,   어느 것이 정답이 될 수는 없겠지만 또 다시 누에바 깐시온과 빅토르 하라에 대한 생각들...
누군가의 표현처럼 '기관총보다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기타'를 가지고 있던 남미의 가수, 예술인들...

(부정변증법 님의 의견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공연 시작 직전부터 흐르기 시작한 마음의 눈물이 시작과 동시에 얼굴에 흐르고
공연 내내 흐르다가 지금도 마음속에서 흐르고 있다. 이 눈물의 시작이 어딜까,
어디를 흐르고 흘러서 어디로 가는 걸까......       알고 싶다.
이것을 알게 되면  "지금까지 또 이제부터" 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