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1일 화요일

민중언론학의 논리 - 손석춘

<민중언론학의 논리> 손석춘. 2015. 2월. 철수와영희 출판사

빌려서 읽고 있는데 살지 말지 망설이는 중이다. <민중>이라는 단어에 대한 그의 설명이 맘에 든다.

머리말
민중.
지금 누군가 그 말을 쓰면, 더구나 언론학자가 학술 서적에서 쓴다면, 지적 나태로 보이기 십상이다.  "아직도 1980년대식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라는 힐난이 쏟아질 성싶다. 실제로 나는 이미 어느 학회에서 그 말을 들었다. 그것도 '진보'를 내세운 학회에서 일어난'사건'이다.

최근에 참석한 어느 학계 토론회에선 대학가에 큰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서울대학교에 재직하며 종합일간신문에 고정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어느 교수가 "민중이란 말은 저항적 담론이라 적절하지 않다"고 사뭇 진지하게 발언했다.

그랬다. '민중'은 이제 빛바랜 사진처럼 학계 안팎에서 폐기되거나 '죽은 개' 취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고 있는 모든 것,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책, 스마트폰, 입고 있는 옷, 앉아 있는 의자, 건물, 오가는 길, 그 모든 것을 만들어온 노동자, 특히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 우리 사회 모두에게 밥을 제공해왔으면서도 스스로는 수출 중심 경제구조에서 내내 '찬밥'을 먹어온 농민, 이른바 '구조조정'의 일상화로 인해 과포화 상태에 이른 자영업인,  청년 실업자들,  남편의 얇은 임금으로 가계를 꾸려가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 그 '사람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시민'이나 '국민'으로 그들을 담아낼 수 있는가?

적잖은 지식인들이 '민중'의 호명을 1980년대의 '운동권적 사유'로 치부하지만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민중'은 그보다 훨씬 이전, 일제 강점기는 물론 조선왕조 시대에도 쓰인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민중이라는 말에 '운동권'이라는 낡은 색깔을 주입시켰을까. 다름 아닌 언론기관이다. 바로 그래서다. 민중언론학을 이 책이 제안하는 까닭은.

... 중략 ...
 
더는 에두르지 않고 명토박아둔다. 해방 70년, 분단 70년을 맞으며 '민중언론학'을 제기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언론인이 될 수 있는 우리 시대 -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정보과학기술 혁명의 영향을 받고 있다 - 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다. 지금 이 순간도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모바일메신저 등으로 다양하게 '언론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 곧 네티즌에게 바로 당신이 '21세기 민중'이라는 사실을, 당신의 언론활동이 더 풍부해지려면 학문적 '무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보혁명 시대의 민중인 네티즌이 자신과 이웃을 '민중'으로 옳게 호명할 때 비로소 개개인의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진실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누군가가 '네티즌이 곧 민중'이라는 논리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아니 그 이전에 '민중'이라는 말부터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럴수록 이 책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길 소망한다. 미국에서 '시민미디어센터'(Center for Citizen Media)를 설립한 댄 길모어(Dan Gilmor)는 네티즌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미디어(We the Media)"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민'이란 말을 즐겨 썼지만, 민중언론학은 우리가 미디어인 시대에 "우리가 민중(We the People)"임을 선언한다. '위 더 피플'은 공교롭게도 미구 오바마 정부가 개설한 '백악관 청원사이트'이름이어서 적절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거꾸로 그만큼 보편적인 논리가 될 수 있다.

다만 미국의 지성인들도 경고하고 있듯이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그 민중은 가장 멍청하거나 천박한 사람이 될 가능성도 높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는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조직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는 비단 밖에만 있지 않고 우리 안에도 있다. 누가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지 꼭 짚어야 할 이유다.

무릇 모든 학문은 물음에서 시작한다. 민중언론학은 우리가 민중이라는 사실 확인과 더불어서 누가 네티즌을 멍청하게 만드는가라는 절박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2015년  2월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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