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급진> -원톄쥔 지음, 김진공 옮김. 돌베개 출판사 2013.10.
수십년 전에 우리나라는 섬나라가 되었다. 그 이후로 섬에 갇혀 사는 우리는 뭔가 갑갑함을 갖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갑갑함을 많이 느낀다.
우리는 가까운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다. 북에 대해서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왕래, 통신이 불가능하고,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예전 기억만 가지고 있을 뿐, 같은 시대에 가까이 살면서 이웃의 모습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부터 동북아시아,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웹서핑을 하면서 정보를 찾고 있다가 이 책 <백년의 급진>을 만났다.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원톄쥔. 중국인, 학자, 올해 63세. 책을 읽으면서 계속 감탄했다. 자신의 연구에 열심이었고 그 결과에 대해서 확신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중국 실제 현실에 기반한, 중국 민중의 입장에서 매우 주체적인 연구'에 대해 놀라고 또 놀랐다. 나이 육십이 되면 저 정도 해야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결핍의 시대에는 그것이 어떤 체제,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정부이든, 그리고 누가 지도자이든 공통의 규칙을 따르게 마련이다. 자본이 극도로 결핍되어 있을 때, 정부의 첫 번째 임무는 자본의 축적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친자본적 정책을 취하게 된다.
중국의 사상계가 유럽 일부 국가의 특정한 시공간적 조건에서 형성된 좌파 또는 우파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보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다. 또한 과거를 모두 극좌적 오류로 단정하는 것은 더욱 황당하다. 자본이 극도로 결핍된 시대에는 객관적으로 볼 때 이른바 좌경적 오류가 발생하기 어렵다. 오류가 있었다면 오히려 극우적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시기에는 어떤 성향의 정부든 친자본적인 정책을 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본이 더 이상 부족하지 않고 과잉상태에 이르면, 어떤 당파나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라도, 그리고 누가 지도자라도 민생을 지향하는 쪽으로 방향을 조정한다. 친민생 정책이 구현될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후발국가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모두 자본의 극단적 결핍과 관련이 있다. 자본의 극단적 결핍으로 인한 압력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해법이나 정책은 비교적 급진적인 경향을 띨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좌,우익의 양분법은 별 소용이 없다. -p.30,31
원톄쥔은 대단히 실제적인 내용으로 중국의 최근 100년을 주로 경제를 기본으로 분석한다.
책에는 뜻밖의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도시화에 대한 정책이다.
수천년 전부터 있어왔던 농민이라는 존재가 지금도 중국인구의 70~80%를 차지하고 있다.
공산당이 집권을 시작했던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이들은 매우 생산량이 적은 소자산계급이다. 당과 정부는 모든 농민들이 농지를 가지게 했고 농사를 지을수 있었지만 자급자족 수준을 크게 넘지 않았다.
도시화가 진행되어도 도시로 들어오는 인구가 다른 개발도상국들처럼 많아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강력한 힘이 있는 공산당과 중앙정부가 있어 도시가 비대해지려는 때가 되면 농촌으로 돌아가라는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1억 명 이상의 개발도상국들에서 보이는 대도시의 빈민굴이 중국에는 없다.
원톄쥔은 서구에서 만들어진 이론들로는 중국을 비롯한 동양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서구의 자본주의적 현대화는 국가가 비인도적인 범죄의 형태로 해외에서 진행한 대규모의 식민지 확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리스 로마의 노예제 문명을 전 세계에서 부흥시킨 이 과정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엄청난 죽음과 자원 및 환경에 대한 약탈적 파괴를 수반했다.
해외의 재부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유럽의 '빈곤층'과 범죄자들을 대거 식민지로 내보냄으로써, 서구는 비로서 원시적 축적을 완성할 수 있었다.
후대인들이 흔히 말하는 기술 혁신과 '정치 문명'-식민지 경영을 통해 수익의 순수 증가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부르주아계급과 기존의 봉건귀족이 정치적 타협을 이룬것-이 비로서 가능해진 것이다. - p.7,8
이후로도 서구는 산업자본의 확장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식민지에 전가했다.
종주국의 산업자본이 식민지를 향해 대규모로 확장해감으로써, 요소의 배분에 구조적인 사회적 변화가 발생했고(산업자본에 비해 산업노동자가 상대적으로 희소한 요소가 됨으로써, 노동자가 협상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는 계급정치가 근대 서구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기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 p.8
그러나, 이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고, 결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문제들은 남아 있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서구는 해외로 산업을 이전하기 시작했고, 경제구조를 금융자본 위주로 재편했다. 산업자본 단계에 내생적으로 나타나는, 노동과 자본이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사회구조의 내재적 모순도 그에 따라 개발도상국으로 이전되었다.
서구사회는 금융과 서비스와 기술 분야에 취업한 화이트칼라 중심으로 전환했고, 중산층이 주도하는 다이아몬드형의 시민사회와 이를 토대로 한 이른바 정치 현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숙고해야 할 점은, 기생적인 금융서비스업에 의해 지탱되고 내재적으로 기생성을 가지고 있는 서구의 정치 현대화가 사실은 주로 산업자본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에 의존하여 유지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에 금융 쓰나미가 밀어닥치자 서방국가의 부채 위기가 폭로되었고, 높은 비용이 요구되는 이런 현대화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게다가 유권자의 압력에 따라 복지의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는 정치 현대화의 '비가역적인 톱니바퀴' 속에서, 그 어떤 정치가도 금융자본의 기생성을 계속 심화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다.
즉 정부가 직접 나서서 화페를 확대 발행하고 부채를 늘려서, 서구사회의 대다수 중산층 집단의 복지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한편 대다수 개발도상국이 자신의 제도의 비용을 외부에 전가함으로써 국내의 모순을 해소할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식의 현대화된 경제적 토대를 세울 수 없는 것이고, 그 위에 현대적인 상부구조를 건설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는 더욱 없다. 따라서 '전반적인 서구화'를 추구하는 급진적인 시도에 아무리 심혈을 기울이더라도, 그것은 결국 '머리카락을 위로 잡아당겨 지구를 떠나려는 것'처럼 무의미한 노력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인도의 뭄바이와 델리 등을 막론하고, 대형 개발도상국에는 모두 인구의 절반이 넘는 빈민이 거주하는 대형 빈민굴이 존재한다.
사유화에 따른 제도는 농촌의 땅을 잃은 농민들을 빈민굴로 유입시켜 도시의 극빈층으로 만들었다.
도시화란 결국 '공간을 수평이동하여 빈곤을 집중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매춘과 도박과 마약이 성행하고 범죄조직이 판을 치는 상황에서 정부의 정상적인 통치가 실현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비슷한 예를 셀 수 없이 들 수 있다.대다수의 급진적인 주류가 추구하는 서구의 제도, 즉 시장화, 자유화, 민주화, 글로벌화 등은 여타 개발도상국들이 중국에 비해 훨씬 먼저 그리고 더욱 과감하게 시행했다.
그러나 수입 격차와 도농 격차, 그리고 지역 격차라는 3대 격차를 제대로 해결한 경우는 하나도 없다. 그저 대다수의 빈곤과 고통을 대가로 해서 소수의 주류 이익집단이 서구식 현대화에 진입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적 모순은 더욱 첨예해졌다. -p.9,10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공부를 해도 사색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고, 특히 외국에서 공부를 한다면 반드시 이 땅의 현실에서 출발해서 그 공부한 내용과 만나야 할 것이다. 현장성의 중요함을 알 수 있었고, 사회과학자의 연구, 주장이 얼마나 주체적인 입장에서 정리가 되어야 하는지 모범이 되는 책이다.
보다 더 쉽고 가깝게, 동북아를 다니고 만나고 싶다. 유럽에서는 다른 나라를 다니는게 이웃동네 다니는 정도라는데, 우리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다음은 이 책과 관련 기사들이다.
“중국 혁명은 사회주의가 아닌 민족자본주의 건설이었다” '13.10.20.
마오의 본심은 '친자본'? 현대 중국 금기를 깨다! '13.11.01.
동방의 귀환, 일독 이독 다독을 권한다! '13.11.29.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