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장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앞서 말했던 포정해우 와 함께 내가 무척 좋아하는 대목이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강의>에는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란 소제목으로 실려있다.
제나라 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목수 윤편輪扁이 당하堂下에
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당상을 쳐다보며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한 말씀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말(을 쓴 책)입니
까?"
환공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지금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신 분이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환공이 말했다.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목수 따위가 감히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
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관이 말했다.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
이 깎으면 (축軸 즉 굴대가)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
가)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
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
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옛사람도 그와 마
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
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
라고 하는 것입니다."
- 중 략 -
세상에서 도道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
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
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
이다.
- 신 영 복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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