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
-윤 동 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십대 초반에 이 시인을 만났다.
지금 보니 이 시인의 젊은 답답함을 조금 알 것 같다.
지금 98학번 나이에 죽었다는데...
살기 답답하고 막막했던 인생을, 시대를,
그것도 십대, 이십대를 보냈던 시인은
너무 아쉽게도
우리처럼 사상을 접하지 못하고
투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달랑 시집 한 권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겼다.
며칠 전에 "문익환 평전"을 보다가 다시
시인을 보게 되서 모처럼 십대로 돌아가본다.
사춘기적 반항과 세상에 대한 경외를 갖고
지내던 그때...
세상에 대한 경외는 가슴에 품고
약간의 만용과 술자리들, 그리고 패기 넘치던 이십대...
이제 그때 것들을 바탕으로
조용히 끊임없이 나아가는 나의 삶,
"먹을 것 없는 사람들에게
다시 돌아가야 한다..."
좀 더 빨리 갔으면 좋겠다.
조직이라도 하나 만들 수 있다면...
이미 어떠한 정치조직에 있는 사람들 !
조직적 성과를 내오기를...
홀로 있는 사람들 !
만들던가 들어가던가...
오랜만에 떠들어 본다.
북쪽의 군사력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비오는 날에...
삶, 문예, 모든 울림.....
2006년 6월 22일에 어느 카페에 썼던 글입니다.